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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옛날 SI 회사 생활 이야기(3) - 넌 이미 X 되어 있다.
    IT 기타/SI 회사생활 2023. 4. 20. 10:5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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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다른 사람에게 받은 컴퓨터를 가지고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았다. 컴퓨터를 켜고... 아.. 비번이 걸려 있었다. 컴퓨터를 빌려준 분에게 컴퓨터 잠금을 열어 달라고 했고 그분에게 질문을 했다.

     

    '제가 참고해야 할 만한 문서나 WIKI 사이트 같은 게 있나요?'

     

    그분은 잠시 당황하더니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.

     

    '아 그런 건 없어요... 그냥 인터넷 하시면서 기다리고 있으시면 팀장님이 오셔서 이야기해 주실 거예요..'

     

    뭐 이런 참신하고 황당한 소리가 다 있을까? 이 팀은 도대체 뭐 길래 신규 입사자에 대한 준비도 안되어 있는 거지? 인터넷을 하면서  기다리라고?

    황망함에 멍 때리고 있을 때 한 젊은 친구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.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나에게 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. 

     

    '안녕하세요. 심심하실 텐데 저랑 커피라도 한잔 하시죠'

     

    너무나도 반가운 제안이었다. 어차피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 밖 카페로 향했다. 회사 1층 로비에도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굳이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로 날 안내했다. 함께 길을 걸으며 집이 어디고, 회사까지 얼마나 걸리고, 뭐 타고 왔는지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 대화를 하고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.

     

    '도대체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?'

     

    여기를 왜 왔다니? 그게 무슨 말이지? 내가 여기 입사한 게 큰 잘못인가? 뭐지?

     

    '이 썩어 빠진 곳으로 오시다니... 제가 어차피 며칠 후면 퇴사를 하는데... 말을 안 하려다가..'

     

    그의 입에서 지금 다니고 있는 퇴사를 앞둔 회사에 대해 엄청난 쌍욕이 튀어나왔다. 퇴사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모든 표현이 찰졌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마치 일타 강사 앞에서 결코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을 명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.

     

    많은 말을 들었지만 알기 쉽게 일타 강사님의 회사 상황과 이 팀에 대한 강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.

     

    1. 기술력과 실력 따위는 1도 없다. 하지만 팀장님은 실력이 정말 좋다.

    2. 실력은 없지만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. 하지만 팀장님은 정치력 0이다. 아니 -99다.

    3. H와 A를 조심해라. 하지만 팀장님은 H와 A를 좋아한다.

    4. H는 XX X XXX, XX, XX. 하지만 팀장님은 H를 좋아한다.

    5. 밑에 젊은 친구들 좀 많이 도와주시라. 하지만 팀장님은 전혀 사람 관리를 못한다. 관리 능력 0이다.

    6. 일하는 사람만 일한다. 노는 사람은 그냥 놀면서 월급 타간다. 하지만 팀장님이 제일 바쁘다.

     

    결국 당신은 이미 X 된 것이요. 잘해 보시오. 난 다른 곳으로 가오~~

     

    그렇게 그는 나에게 한 풀이하듯 쏟아 붙고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한다며 며칠 후 진짜 퇴사를 하였다.

     

    회사에 불만이 없지 않은 사람이 당연히 없겠지만 분노에 찬 그의 강의는 정말 나에게 많은 숙제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.

     

    입사하자마자 탈출 각인가? 에이.. 겪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한 사람의 말만 믿어... 어떻게 좀 내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? 그런데 팀장님은????  어떻게 해야 하나..

     

    PS

    1. 퇴사 인터뷰를 할 때 회사에 대해 너무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.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퇴사자들은 솔직히 다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... 그렇게 이야기해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한다. 개선될 것이라면 이미 수많은 퇴사자들이 이야기했고 좋아졌을 테니까.. 그리고 이직 시 크로스 검증 과정으로 평판을 전 직장에 조회해 보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나쁘게 말하고 가면 평판 조회에서 안 좋게 응답이 갈 수도 있다고 한다. 그러니 적당히 에둘러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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